
여름 하면 계곡산행이 떠오릅니다. 계곡 중에서도 정말 시원한 바람과 차가운 계곡물이 있는 곳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가리왕산입니다. 특히나 가리왕산 장구목이입구 코스는 장구목이입구에 주차를 하고 차 문을 여는 순간, 한여름인데도 에어컨 바람 같은 냉기가 확 치고 들어왔습니다. 이끼계곡에서 밀려오는 바람이었습니다. 계곡물에 살짝 발을 담가 보았습니다. 머릿속까지 찌릿할 정도로 차가운 계곡물은 단 1분도 버티기 힘들었습니다. 그 순간 '아, 이건 와봐야 알겠구나. 잘 왔다.' 싶었습니다.
한국의 100대 명산 <가리왕산>

가리왕산이 해발 1,561m로 한국에서 9번째로 높은 산이라는 사실을 알고계신분은 많지 않습니다. 정상까지 상승고도가 무려 1,200m에 달합니다. 장구목이 출발점의 해발이 약 400m이고, 정상까지 거리는 4.3km입니다. 오색에서 해발 1,708m의 설악산 대청봉을 오르는 거리가 4.7km라는 걸 감안하면, 짧은 거리에 더 많은 고도를 치고 올라가는 셈입니다.
평균 경사가 27도 이상으로, 오색 코스(경사각 23도)나 중산리 코스(경사각 24도)보다 가파릅니다. 여기서 경사각이란 수평 거리 대비 높이 변화의 비율을 표현한 각도입니다. 숫자가 클수록 같은 거리를 걸어도 더 많이 힘이 든다는 뜻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육산이니까 좀 수월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임도 교차로 이후 정상까지 남은 1.6km 구간은 생각을 고쳐먹게 만들었습니다. 솔직히 그 구간은 지옥 같았습니다. 평지 구간이 임도 하나를 제외하면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그렇다고 이 코스가 단순히 힘들기만 한 산이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경사가 심해서 체력 소모가 크다"는 의견도 있는데, 저는 계곡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냉기 그리고 울창한 수림이 뙤약볕을 완전히 차단해 주기 때문에 한여름에도 체감 온도가 훨씬 낮다고 느꼈습니다. 완전한 활엽수 극상림, 즉 더 이상 천이가 일어나지 않는 안정된 최종 단계의 숲이 등산로 전체를 뒤덮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 장구목이 출발 해발 약 400m - 정상 1,561m, 상승고도 약1,200m
- 장구목이~정상 거리 4.3km, 평균 경사각 약 27도
- 임도 교차로 이후 1.6km 구간이 체감상 가장 힘든 구간
- 울창한 활엽수림 덕분에 한여름에도 그늘이 지속됨
- 9부 능선 이후 주목 군락지 - 체력적 보상 구간
- 총 산행 거리(원점회귀 기준) 약 8.7km, 소요시간 5시간 내외
등산코스 안내 - 장구목이코스, 정말 힘든 길인가

"가리왕산은 조망이 없어서 심심하다"는 말을 들은 적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정상에 오르기 전까지는 울창한 나무 때문에 사방이 막혀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조망 대신 이끼계곡이 있기 때문입니다. 장구목이에서 출발해 임도까지 이어지는 약 2.7km 구간은 계곡을 끼고 오릅니다. 계곡 바위 전체를 초록 이끼가 완전히 뒤덮고 있고, 그 위로 물이 흘러내립니다. 제가 지금까지 산행한 곳 중에서 계곡 경관이 가장 아름다웠던 곳을 꼽으라면, 가리왕산 이끼계곡이 그 첫 번째입니다. 가리왕산의 높은 산줄기 위에 한대성 식물과 자작나무 군락이 자생하고, 이끼류가 대규모로 발달할 수 있는 환경은 일부로 조경을 해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건 수백 년 원시림이 만들어낸 자연 그 자체입니다.
특히 임도를 지나 9부 능선에 가까워질 즈음, 갑자기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이끼계곡의 초록 세계에서 벗어나 주목 군락이 나타납니다. 주목은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이라는 말로 유명한 고산 침엽수입니다. 수명이 극히 길고 재질이 치밀해 고사한 뒤에도 수백 년 동안 썩지 않고 형태를 유지한다는 뜻에서 이런 별칭이 붙었습니다. 가리왕산 정상부에는 이 주목이 군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가리왕산 상봉 정상에는 넓은 공터처럼 되어있어 비박캠핑을 하는 분들이 즐겨찾기에 너무나도 좋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도 산행 중에 많은 캠퍼들을 마주쳤습니다.
산행 팁 - 버스, 택시 실전 정보
가리왕산은 접근성 면에서 많은 분들이 먼저 포기를 고민하는 산입니다. 강원도 정선과 평창의 경계에 위치하다 보니 정보가 흩어져 있고, "차 없으면 못 간다"는 인식도 있습니다. 전에 제가 대중교통을 타고 다녀온 적이 있는데, 생각보다 연결이 잘 되어 있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 동서울터미널 → 진부터미널 → 정선행 버스 → 장구목이 하차 (약 30분 소요, 기사님 요청 필수, 현금 3,000원)
서울 동서울 터미널에서 오전 6시 40분 버스를 타면 진부터미널에 오전 9시에 도착합니다. 여기서 9시 3분 정선행 버스로 환승하면 장구목이에서 하차할 수 있습니다. 장구목이는 공식 정류장이 아니므로 반드시 탑승 전 기사님께 미리 말씀드려야 합니다. 차내 안내 방송에서도 장구목이라고 알려주긴 하지만, 명시적으로 요청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혹, 진부역에서 버스를 환승 못하면 장구목이까지 택시를 이용했을 때 소요시간 20분에 약 3만원 정도의 비용이 듭니다. 다시 되돌아갈 때는 장구목이 맞은편 수향계곡 정류장에서 오후 3시 30분경 버스가 옵니다. 진부와 정선 방향 모두 탑승 가능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A>
Q : 가리왕산 장구목이코스 난이도는 어느 정도인가요?
A : 중상급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경사각 27도, 상승고도 약 1,200m에 평지 구간이 거의 없는 구조입니다. 오색에서 대청봉을 오르는 경사보다 가파르며, 특히 임도에서 정상까지 약 1.6km 구간은 체력 소모가 심합니다. 총 산행 시간은 약 5시간 내외로 예상하는 것이 좋습니다.
Q : 가리왕산 여름 산행, 더운 데 갈 수 있나요?
A : 저는 여름에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구목이 입구 계곡에서 올라오는 냉기가 한여름인데도 에어컨 수준이었습니다. 산행 내내 불어오는 냉기가 매우 시원했고, 활엽수 극상림으로 덮여 있어 햇볕이 거의 들지 않습니다. 경사가 심해 체력소모는 크지만, 폭염이 느껴지는 구간은 사실상 없었습니다.
Q : 장구목이코스와 발심사코스 중 어느 쪽이 더 낫나요?
A : 목적에 따라 다릅니다. 발심사코스는 총 왕복 7.8km, 획득고도 약 600m로 짧고 수월한 편입니다. 반면 왕복 8.7km의 장구목이코스는 획득고도 약 1200m입니다. 그러나 이끼계곡과 주목군락지는 장구목이입구코스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가리왕산의 핵심을 보고 싶다면 장구목이코스를 추천합니다.
Q : 정상에서 하산할 때 휴양림 방향이 낫나요? 원점회귀가 낫나요?
A : 안내버스산악회 이용자나 대중교통 이용자라면 하산 방향을 미리 결정해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휴양림 쪽으로 하산하면 정선 시내로 나가는 버스를 탈 수 있고, 장구목이로 원점회귀하면 수향계곡 정류장에서 진부 또는 정선 방향 버스를 탈 수 있습니다.
에필로그

가리왕산을 올림픽 벌목 논란으로만 기억하는 분이라면, 직접 장구목이 입구에 서는 순간 그 생각이 바뀔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는 가리왕산을 제가 지금까지 다녀온 100대 명산 중에서 계곡이 가장 아름다웠던 산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이끼계곡의 냉기, 원시림의 밀도, 정상 직전 주목군락지의 분위기는 글로 다 전달하기가 어렵습니다. 특히나 이끼계곡에서 불어오는 냉기, 한여름에도 발을 1분도 못 담글 만큼 차가웠던 계곡물, 그리고 지옥 같은 업힐 끝에 나타난 주목 군락지. 제 경험상 이건 와봐야 알 수 있습니다. 단, 이 산은 체력적으로 만만한 산이 아닙니다. 임도 이후 구간을 충분한 준비 없이 올랐다가는 하산길이 더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한여름 산행지로 가리왕산은 충분히 상위권에 올릴 만한 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