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100대 명산 <관악산> - 불꽃의 영험함을 품은 서울의 진산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과 경기도 안양시, 과천시의 경계를 이루며 웅장하게 솟아오른 해발 632m의 관악산은 대한민국 100대 명산이자 경기 5악(五岳)의 하나로 꼽히는 명산입니다. 블랙야크(BAC) 100대 명산 인증에서 압도적으로 1위에 빛나는 산입니다. 경기 북부에 치우친 송악산, 운악산, 화악산, 감악산과 달리 홀로 한강 남쪽에 자리하여 오랫동안 수도권 주민들의 허파이자 영적인 안식처 역할을 해왔습니다. 산의 형세가 마치 선비가 쓰는 갓(冠)을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관악산은 수려한 화강암 암릉미와 도심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탁월한 조망을 자랑하여 요즘 가장 사랑받는 산행지입니다. 단순히 접근성이 좋아서 많이 찾는 산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관악산이 지닌 풍수지리적 내력과 역사적 서사 또한 매우 깊습니다. 관악산은 날카로운 화강암 암봉들이 불꽃이 피어오르는 듯한 형상을 띠고 있고 옛 한양 도성을 기준으로 정남 쪽에 위치하여 조선 초기 도읍을 정할 때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는 관악산의 강한 기운이 왕궁인 경복궁을 범할 것을 매우 염려하여 이를 다스리기 위해 다양한 풍수적 비보(裨補) 책을 세웠다고 합니다.
유명 풍수학자가 말하길 관악산 전체가 드센 바위 기운으로 가득 차 있어서 일반적인 인간이 기거할 만한 터는 오직 연주암(戀主臺) 자리 뿐이라고 평하였습니다. 그래서 강한 기운을 감당할 수 있는 관공서나 군부대, 병원 등이 들어서기에는 적합하지만 민가가 살기에는 척박하다는 논리였습니다. 실제로 북쪽 기슭에 자리한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부지는 과거 사람이 살지 않는 골프장이었습니다. 또한 관악산 주변으로는 수도방위사령부, 정부과천청사 등 국가 중요 보안시설들이 밀집해 있는데, 이는 산세의 삼엄함과 지형적 차폐성을 효율적으로 활용한 현대적 비보(裨補)의 일환으로 해설할 수 있습니다.
등산코스 안내 - 다시 또 관악산
관악산은 도심철도망 1호선, 2호선, 4호선, 신림선과의 연계성이 탁월하여 연간 몇백만명이 찾는 메가히트 등산지입니다. 대중적인 인지도와 달리 산행 난이도는 결코 낮지 않습니다. 지리산이나 덕유산과 달리, 정상부로 갈수록 마사토와 거친 암벽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북한산에 버금가거나 특정 능선은 그 이상의 체력과 악력을 요구합니다.
가장 유명한 코스 3가지중 첫 번째는 2호선 서울대입구역 코스로 정상까지 최단시간에 주파 가능한 가성비 코스입니다. 두 번째 2호선과 4호선이 만나는 사당역 코스는 관음사 국기봉을 지나 주능선을 타는 코스로, 조망이 매우 뛰어나나 산행거리가 깁니다. 세 번째 4호선 과천, 정부청사역에서 시작하는 과천향교 코스입니다. 이 방향으로는 쉽게 오를 수 있는 코스도 있으나, 수많은 바위 봉우리를 네 발로 기어올라야 하는 상급자 전용 암릉코스인 육봉, 팔봉능선도 있습니다. 최근 등산 동호인들 사이에서 여름철 숨은 명코스로 각광받고 있는 코스 중 하나인 '케이블카 능선'도 과천향교에서 시작합니다.
사당 능선이 하루종일 강한 직사광선에 노출되어 탈수를 유발하는 코스인 반면, 케이블카 능선은 암릉 타는 스릴과 쾌적한 그늘 사면을 동시에 제공하며 해를 등지고 오르는 지형적 특성 덕분에 상대적으로 선선한 산행이 가능합니다.
등산초보인데 관악산 연주대 정상석 인증샷을 꼭 찍고 싶다고 하시는 분들은 무조건 첫 번째 서울대 코스를 추천합니다. 서울대 공학관에서 시작하여 깔딱 고개를 지나 연주대까지 가는 코스입니다. 버스를 타고 산중턱 높이까지 올라가기 때문에 체력을 많이 아낄 수 있어 왕복 2시간 30분이면 다녀올 수 있습니다.
산행경력이 많은 분들이라면 사당역 코스를 추천합니다. 사당역에서 시작하여 관음사, 국기봉, 마당바위, 연주대를 가는 코스입니다. 소요시간은 왕복 4시간30분정도 소요됩니다. 초반부터 계단과 바위암릉 구간이 몰아치지만, 능선에 올라타는 순간 사방으로 서울 시내와 한강 뷰가 시원하게 터집니다. 바위를 타는 손맛과 짜릿한 스릴을 즐기는 분들이라면 지루할 틈이 없는 최고의 코스입니다.
육봉과 팔봉능선은 전문 리딩자와 함께가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거칠게 올라가는 바위암릉들도 많지만 바위를 오르다가 루트를 잘못짚어서 오도 가도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또한 낙상 사고도 많이 있습니다. 아찔하고 스릴 있는 코스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경험해보고 싶으시겠지만 꼭 전문 리딩자와 함께 가실 것을 권해드립니다.
팁
관악산에는 12개의 국기봉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아픈역사를 기리는 3월 1일과 8월 15일에는 많은 등산 동호인들이 12개의 국기봉을 찾아서 관악산 곳곳을 누비는 종주산행을 합니다. 어렵고 힘들었던 과거를 되새기는 의미 있는 산행들이 20km의 장거리 힘든 코스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애국자가 아니더라도 애국심이 많이 없더라도 한 번쯤은 도전해 보면 그날의 의미를 몸소 체험하실 수 있을 겁니다.
관악산의 봄은 진달래와 벚꽃으로 물듭니다. 겨우내 회색빛이었던 바위산 사이사이로 연둣빛 새싹이 돋아나고 연분홍 진달래가 수줍게 피어난 모습을 보면 가슴이 몽글몽글해집니다. 따스한 봄바람을 맞으며 가볍게 산책하듯 다녀올 수 있는 계절입니다.
여름의 관악산은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힘들긴 하지만 곳곳에 있는 계곡들이 더위를 날려줄 만큼 시원합니다. 무더운 여름날 땀을 뻘뻘 흘리며 정상에 오르고 탁 트인 시야로 들어오는 파란 하늘과 초록빛 능선을 타고 내려와 계곡에서 더위를 식히면 무릉도원이 따로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관악산의 하이라이트는 가을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연주대 정상에서 바라보는 불꽃바위와 그 주변을 감싸 안은 오색 단풍의 조화는 말 그대로 예술입니다. 가을철 마당바위에 걸터앉아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먹는 간식은 최고의 미식 중 하나입니다.
악산인 만큼 겨울의 관악산은 꽤나 매섭고 위험합니다. 당연히 6봉능선 같은 거친 암릉코스는 가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눈이 내린 다음 날 아이젠을 차고 올라간 관악산은 겨울왕국 그 자체입니다. 하얗게 눈이 쌓인 연주암의 고즈넉한 풍경과 거친 바위 실루엣 위에 내려앉은 눈꽃들을 보면 왜 사람들이 겨울 산행에 중독되는지 이해하게 됩니다.
에필로그 - 산이 주는 회복의 기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직장인들과 청년들은 과도한 업무와 끊임없는 디지털 피로 속에서 종종 '번아웃(Burnout)'을 경험합니다. 저도 주말 없는 야근에 시달리고 심신이 완전히 고갈되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때 우연히 찾았던 관악산의 거친 암릉과 바위의 숨결은 무기력했던 삶에 강렬한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바위를 디딜 때마다 온 신경을 발끝에 집중해야 하는 악산(岳山)의 특성은, 역설적으로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잡념을 지워내고 오직 '현재의 한 걸음'에만 몰입하게 만드는 강력한 명상적 효과를 발휘합니다. 관악산이 예로부터 '소원이 잘 이루어지는 영험한 산'으로 구전된 이유 또한, 이 험준한 지형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발현되는 등산객들의 간절한 집중력과 정신체일(精神統一)의 발현이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산행의 묘미는 정상에서의 성취감뿐만 아니라, 안전하게 하산한 뒤 누리는 미식(美食)의 기쁨에도 있습니다. 최근 방송에서 역술인이 언급한 관악산은 이제 그 인기가 더욱 치솟아 다양한 연령대를 아우르는 모두의 산이 되었습니다. 우리 곁에 가까운 곳, 늘 그 자리에 있는 산, 행운을 가져다주는 관악산에 오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