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광덕산을 처음 갔을 때 "천안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고 해봤자 699m짜리 동네 뒷산 아닐까" 하고 우습게 봤습니다. 그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팔각정 오르기도 전에 깨달았습니다. 차령산맥 주능선에 자리한 광덕산은 흙산 특유의 부드러움 안에 생각보다 단단한 경사를 숨기고 있는 산입니다. 블랙야크 BAC 100대 명산 인증에서 2025년 기준 TOP10에 오를 만큼 찾는 이가 많은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짧다고 만만하게 보면 후회합니다.

광덕사 코스는 왕복 약 4.6km, 숫자만 보면 가볍습니다. 그런데 광덕사 주차장을 출발해 갈림길에 접어드는 순간, 518개짜리 나무 계단이 바로 앞을 막아섭니다.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갈 개념이 있는데, 이 산처럼 암릉(岩稜) — 바위 능선 — 이 아닌 토산(土山)형 산지는 발이 미끄러지지 않는 대신 경사가 완만해 보이는 착시를 줍니다. 실제로 걸어보면 경사 대비가 꽤 뚜렷해서 몸이 먼저 반응합니다. 계단 높이가 낮아서 보폭을 짧게 끊으며 오를 수 있었고, 400번째 계단 근처에 쉼터 벤치가 놓여 있어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실제로 걸어보니 광덕사에서 팔각정까지는 15~20분, 팔각정에서 헬기장까지 약 30분, 헬기장에서 정상까지 추가로 30분 안팎이 걸렸습니다. 총 소요 시간은 장군바위 능선 포함 4시간이었습니다. 장군바위를 경유하는 코스는 전체 거리가 길어지는 대신 경사가 비교적 완만합니다. 반면 장군바위를 생략하고 바로 정상으로 오르는 코스는 짧지만, 처음부터 계단 오르막이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일반적으로 "짧은 코스가 쉽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광덕산 직등 코스는 초보자에게 오히려 더 힘든 선택입니다. 겨울 산행이라면 코스 선택이 더 중요해집니다. 광덕사 쪽 사면은 햇빛이 잘 들어 잔설이 적은 편이지만, 반대편 코스들은 눈이 녹지 않고 쌓여 있어 아이젠 같은 동계 등산 장비 없이는 위험할 수 있습니다.
- (최단코스) 광덕사 직등 코스: 왕복 약 4.6km, 518개 계단, 초반부터 급경사, 난이도 중하
- (인기코스) 장군바위 경유 코스: 6.5km, 거리는 길지만 경사 완만, 육산(흙길) 비율 높음
- 강당골 코스: 왕복 8.5km 초반, 수량이 안정적인 계곡 초입 통과
- 외암민속마을 코스: 약 9km의 장거리 코스, 망경산 연계 가능
광덕산을 제대로 '소비'하는 방법
저는 광덕산을 배태망광설 종주로 가끔 오릅니다. 배태망광설이란 배방산-태화산-망경산-광덕산-설화산을 이어 걷는 천안·아산의 대표 연계 산행 코스입니다. 총 거리가 28km에 달해 흔히 청광종주(청계산-광교산 종주)보다 힘들다고 평가받습니다.산경표(山經表) — 조선 시대에 편찬된 우리나라 산줄기 체계를 정리한 고문헌 — 상으로 보면, 광덕산은 충청남도의 뼈대 산줄기인 금북정맥(錦北正脈)의 핵심 구간에 해당합니다. 금북정맥이란 한남금북정맥에서 갈라져 서해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산줄기를 말하며, 광덕산은 그 줄기 위에서 가장 높이 솟은 구간 중 하나입니다. 이 지형적 맥락을 알고 나면 광덕산이 왜 단독 봉우리가 아닌 넓은 산군(山群)을 이루는지 납득이 됩니다. 배태망광설 종주 도중에 광덕산 정상을 밟을 때는 솔직히 다리가 이미 상당히 소진된 상태입니다. 그런데 막상 정상에 올라서면 꽤 넓은 공터가 펼쳐져 있어서 쉬어가기 딱 좋습니다. 이 너른 정상부는 토산형 산지의 특징인 완만하게 깎인 정상 지형 때문인데, 암릉산처럼 좁고 날카로운 정상석 하나만 있는 구조와는 다릅니다. 종주 후 하산은 광덕사 방향으로 내려오거나 왔던 길을 되돌아 설화산 방향으로 이어가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체력이 남아 있다면 설화산까지 이어가는 것이 이 코스의 완성이지만, 솔직히 광덕산 정상에서 다리 상태를 보고 판단하는 게 맞습니다.
기대와 현실 사이
정상 조망에 대해서는 조금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일반적으로 "날 좋으면 서해까지 보인다"고 알려져 있고, 실제로 맑은 날에는 홍성 오서산이나 서산 가야산 방향까지 시야가 열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경험상 느낀 건, 광덕산은 '전망산'이라기보다는 '조망이 되는 육산'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수목이 빽빽해서 사방이 탁 트이는 개방감보다는 일부 방향으로 시야가 열리는 구조입니다. 그래도 천안 시가지와 아산 평야가 내려다보이는 장면은 충분히 값집니다. 잔구성 산지(殘丘性 山地) — 오랜 침식 과정에서 주변은 깎여나가고 단단한 암체만 남아 형성된 지형 — 특유의 높이에서 내려다보는 분지형 평야 조망은 평지 도시를 이 각도에서 볼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BAC(블랙야크 알파인 클럽) 100대 명산 인증 시스템에 따르면, 광덕산은 2025년 인증 순위 TOP10에서 10위를 기록하며 누적 인증 횟수 14,275회를 달성했습니다(출처: adshot100.com). BAC 인증이란 블랙야크에서 지정한 100대 명산 정상을 직접 방문해 앱으로 인증하는 제도로, 최근 몇 년 사이 산행 목표를 수치로 관리하는 문화가 퍼지면서 광덕산을 찾는 산객이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제가 다녀온 날도 인증 사진을 찍는 분들을 여럿 마주쳤습니다. 헬기장에서 잠시 쉬면서 든 생각이 있습니다. 경기도 양평이나 가평 쪽 육산과 분위기가 꽤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험하지 않은데 심심하지 않고, 거칠지 않은데 만만하지 않은 그 느낌. 광덕산이 100대 명산에 꼽히는 이유가 정상 조망보다 이 산 전체의 결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질문 : 광덕산 등산 초보자도 괜찮을까요?
A. 답변 : 흙산이라 발바닥 충격이 적고 특별히 험한 바위 구간은 없지만, 경사가 꽤 급한 편이라 등산 경험이 거의 없는 분께는 다소 힘들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장군바위 경유 코스처럼 거리는 길어도 경사가 완만한 길을 선택하는 것이 초보자에게 더 맞습니다. 광덕사 직등 코스는 거리가 짧아도 초반 계단이 강렬합니다.
Q. 질문 : 광덕산 주차장은 어디에 있나요?
A. 답변 : 천안 방향에서 접근할 경우 광덕사 주차장을 기준으로 삼으면 됩니다. 주차장에서 등산 갈림길까지는 약 20분 거리이며, 광덕사를 통과해 올라가는 구조입니다. 아산 방향 코스는 외암민속마을 주차장이나 강당골 입구가 출발점이 됩니다.
Q. 질문 : 배태망광설 종주가 청광종주보다 힘들다는 게 사실인가요?
A. 답변 : 저도 처음엔 반신반의했는데, 직접 해보니 총 28km라는 거리 자체가 체력 소모의 주된 원인이었습니다. 청광종주와 단순 비교보다는 개인의 체력과 누적 고도 대응력에 따라 다르지만, 광덕산까지 오르는 시점에 이미 다리가 꽤 소진된 상태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처음 도전한다면 각 산을 개별 산행으로 먼저 파악한 뒤 종주에 나서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Q. 질문 : 광덕산 겨울 등산 때 아이젠이 꼭 필요한가요?
A. 답변 : 광덕사 코스는 햇빛이 잘 들어 잔설이 빨리 녹는 편이라 맑은 날에는 아이젠 없이도 오를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겨울 산행에서 아이젠은 선택이 아닌 기본 장비라고 알려져 있고, 이 원칙은 광덕산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특히 강당골 코스나 외암민속마을 코스는 응달 구간이 많아 적설이 오래 유지되므로 반드시 챙기시기 바랍니다.
에필로그

광덕산은 "천안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는 타이틀에 기대치를 낮추고 갔다가 예상 밖의 묵직함을 경험하는 산입니다. 험하거나 거칠지는 않은데, 부드럽다고 가볍지도 않습니다. 제가 걷고 나서 떠오른 말이 있습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편안한 산". 흙산 특유의 쿠션감 있는 지면, 잣나무 군락지를 지나는 구간의 짙은 수림 냄새,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아산 평야. 이 세 가지가 합쳐진 감각은 암릉산에서는 받기 어려운 것입니다. 처음 방문이라면 광덕사 주차장을 기점으로 장군바위를 경유해 정상을 밟고 광덕사로 하산하는 루트를 권합니다. 하산 후 광덕사와 호두나무 시배지를 둘러보고, 온양온천으로 이동하는 마무리까지 계획하면 하루를 꽉 채울 수 있습니다. 배태망광설 종주에 도전할 계획이 있다면, 광덕산 단독 산행을 먼저 두어 번 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이 산의 경사 패턴에 익숙해지는 과정이 종주 완주율을 높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