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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대 명산 중에서 '환선굴이 있는 산'으로만 기억되는 곳이 있습니다. 그게 덕항산입니다. 솔직히 저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그런데 예수원 코스로 직접 올라보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이 산은 동굴 하나로 설명하기엔 지형 자체가 너무 독특하고, 코스마다 난이도 격차가 극단적으로 갈립니다. 무턱대고 골말에서 올랐다가 926개 철계단에 무릎을 내준 분들의 후기도 충분히 이해됩니다.
덕항산의 정체
카르스트 지형이 만든 산

덕항산을 단순히 '동굴 옆 산'으로 보면 오해가 생깁니다. 이 산의 본질은 카르스트(Karst) 지형에 있습니다. 카르스트란 석회암이 빗물과 지하수에 용식(溶蝕)되어 만들어진 지형으로, 땅속으로 동굴이 뚫리고 지표에는 기암괴석과 돌리네(움푹 파인 웅덩이형 지형)가 형성됩니다. 덕항산 일대가 바로 그런 전형입니다. 더 정확히는 경동지괴(傾動地塊) 지형이기도 합니다. 경동지괴란 지반이 한쪽으로 기울며 융기한 블록 지형으로, 동쪽은 급경사, 서쪽은 완만한 비대칭 구조를 보입니다. 이 때문에 태백 방향에서 접근하면 완만하게 느껴지고, 삼척 동해 방향에서 올라가면 갑자기 직벽에 가까운 경사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제가 골말 방향 후기를 읽으면서 '왜 이렇게 다들 힘들다고 하지?' 의아했는데, 경동지괴 구조를 이해하고 나서야 납득이 됐습니다. 덕항산 일대는 약 4~5억 년 전에 형성된 석회암 지대로, 환선굴(幻仙窟), 대금굴을 포함한 갈매굴, 제암풍혈, 양터목세굴, 덕발세굴 등 크고 작은 석회동굴이 밀집해 있습니다. 이 중 환선굴은 길이 6.9km, 천장 높이 최대 30m로 동양 최대 규모의 동굴로 알려져 있으며 천연기념물 제178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출처: 문화재청). 단순한 관광 동굴이 아니라, 덕항산이라는 카르스트 지형 덩어리가 품고 있는 결과물인 셈입니다. 식생도 그냥 지나치기 아깝습니다. 산림청이 선정한 야생화 100대 명소에 이름을 올린 만큼, 석회암 지대 특유의 희귀 식물들이 분포합니다(출처: 산림청). 환선굴로 올라가는 구간에서는 참작약, 가는대나물, 벌깨풀이 보이고, 골말~지암재 능선 구간에서는 백리향과 하늘말나리, 초롱꽃 군락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제가 이 구간을 직접 걷지 못한 게 아쉬울 만큼, 식물지리학적으로 북방계 식물의 남방한계선이 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 카르스트 지형: 석회암이 용식된 동굴·기암 지대, 덕항산의 핵심 지질 구조
- 경동지괴 구조: 동쪽 급경사·서쪽 완경사의 비대칭 지형, 코스별 난이도 차이의 원인
- 환선굴(천연기념물 제178호): 길이 6.9km, 천장 높이 30m, 동양 최대 규모
- 대이리 동굴지대: 군립공원 및 천연기념물 지정 구역, 다수의 석회동굴 밀집
- 야생화 100대 명소: 참작약, 백리향, 하늘말나리 등 희귀 북방계 식물 분포
최단코스
예수원 코스 직접 올라본 결과

덕항산 코스를 고를 때 저는 예수원 주차장에서 출발하는 최단 코스를 선택했습니다. 출발 고도가 약 780m이고 정상이 1,072.9m이니 순 고도차는 약 300m 남짓, 왕복 거리는 4km입니다. 수치만 보면 가벼운 나들이처럼 보이지만, 강원도 산은 고도차보다 기온 문제가 변수입니다. 제가 갔을 때는 응달 구간에서 체감 온도가 뚝 떨어졌고, 바람까지 세차게 불어 체력 소모가 생각보다 컸습니다. 출발 후 약 5분 만에 갈림길이 나옵니다. 오른쪽은 구미사봉(구부시령) 방향으로 돌아가는 길, 왼쪽은 정상으로 직행하는 최단 루트입니다. 저는 왼쪽을 택했습니다. 초반 20분 동안은 경사가 제법 가파릅니다. 산행 시작 13분에 고도 860m, 20분에 900m를 통과했으니 분당 약 4~5m씩 고도를 높인 셈입니다. 느리게 걸어도 꾸준히 오르는 구조라, 페이스 조절만 잘 하면 체력 낭비 없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40분쯤 걸어 쉼터(1,050m)에 도착했을 때 정상까지는 400m가 남아 있었습니다. 쉼터에서 한 숨 고른 뒤 마지막 오르막 구간을 넘으면 경사가 거의 사라지고, 능선을 따라 수월하게 정상에 닿습니다. 총 소요 시간은 왕복 약 2시간 이었습니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솔직히 말하면 기대보다 크진 않았습니다. 정상석 자체는 2024년 10월에 새로 설치된 것으로, 제가 직접 확인했습니다. 육안으로는 두타산·청옥산 방향의 산그리메와 날이 맑으면 동해항·삼척항 방향도 보인다고 하는데, 영상으로 담기엔 한계가 있더군요. 반면 골말~지암재~환선굴 종주 코스를 택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일반적으로 덕항산은 '쉬운 100대 명산'으로 알려져 있는데, 저는 코스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산이 된다고 봅니다. 예수원 코스는 초보도 소화 가능한 수준이지만, 골말에서 올라 환선굴로 내려오는 '환종주' 코스는 926개 철계단과 급경사 낙엽길이 기다리고 있어 치악산 사다리병창 구간과 맞먹는 난이도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이건 제 경험이 아닌 현장 정보를 종합한 판단이지만, 코스 선택 전에 반드시 감안해야 할 부분입니다.
덕항산 등산코스 핵심 포인트
- 예수원 코스(최단코스, 왕복4km, 약 2시간) 예수원 진입로 → 구와우마을/능선 → 덕항산 정상 → 원점회귀
- 환선굴 코스(왕복 9km, 약 5시간) 골말/환선굴 주차장 → 동굴지대/926계단 → 덕항산 정상 → 환선봉/지각산 → 자암재 → 환선굴 → 골말 주차
Q & A
자주 묻는 질문
Q. 덕항산 예수원 코스 초보도 갈 수 있나요?
A. 예수원 코스는 왕복 4km에 순 고도차 약 300m 수준으로, 등산 초보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난이도입니다. 다만 강원도 산 특성상 응달 구간이 길고 기온이 낮을 수 있으니, 계절에 따라 방풍 재킷은 챙기는 편이 좋습니다. 초반 가파른 구간만 넘으면 능선 이후로는 경사가 크게 줄어듭니다.
Q. 환선굴은 예약 없이 바로 들어갈 수 있나요?
A. 환선굴은 상시 개방으로 현장 매표가 가능합니다. 반면 같은 덕항산 자락의 대금굴은 100% 사전 예약제로 운영되며 하루 입장 인원이 제한됩니다. 덕항산 산행과 대금굴 관람을 함께 계획하고 있다면 방문 전 반드시 예약을 먼저 잡아야 합니다.
Q. 덕항산 정상석은 언제 생겼나요?
A. 항산 정상석은 2024년 10월에 새로 설치되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별도의 정상석 없이 지나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제가 확인한 바로는 크기가 작은 편이라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놓치기 쉽습니다.
Q. 골말~환선굴 환종주 코스 소요 시간이 얼마나 되나요?
A. 환선굴 관람 시간을 제외하고 약 9km 거리에 3~4시간이 소요되는 코스입니다. 지각산 환선봉(1,085m)을 경유해 자암재에서 환선굴로 하산하는 루트인데, 자암재 이후 하산 구간이 급경사 흙길과 낙엽이 겹쳐 매우 미끄럽습니다. 등산 스틱과 미끄럼 방지 등산화는 필수로 준비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에필로그
덕항산은 코스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산이 됩니다. 예수원 코스는 2시간 왕복에 큰 부담이 없지만, 카르스트 지형의 속살을 제대로 보려면 환종주 코스로 지각산 환선봉을 넘고 제1·제2 전망대에서 기암괴석 군을 내려다보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저는 최단 코스를 택했기에 그 풍경을 직접 담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100대 명산 선정 이유인 대이리 동굴지대와 환선굴은 산행 후 들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어치가 있습니다. 대금굴까지 함께 계획한다면 반드시 사전 예약부터 잡고 날짜를 맞추는 것이 순서입니다. 덕항산은 이름이 생소한 만큼 덜 붐비는 편이라, 제대로 코스를 준비하고 간다면 조용하고 깊은 산행을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