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100대 명산 <도봉산> - 화강암이 빚어낸 천혜의 암벽
수도권의 서북방을 굳건히 지키고 선 해발 740m의 도봉산(道峯山)은 갈 때마다 그 묵직한 화강암의 질감으로 등산객을 압도합니다. 산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바위 성곽처럼 다가오는 도봉산은 1983년 북한산과 함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대한민국 100대 명산 중 하나입니다. 한북정맥의 당당한 맥줄 기를 잇고 있으며, 행정구역상으로는 서울특별시 도봉구, 경기도 의정부시와 양주시 장흥면에 걸쳐 처연하면서도 당당한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도봉(道峯)이라는 이름의 유래에는 두 가지 흥미로운 설이 전해집니다. 산 전체가 거대한 바윗길과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어 도봉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지형학적 설이 그 첫 번째고, 조선 왕조 창업의 기틀을 닦은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가 이곳의 천축사, 회룡사 등에서 기도를 올리며 왕조 창업의 길(道)을 열었기 때문이라는 역사적 설이 그 두 번째입니다. 실제로 도봉산의 거대한 암봉군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조선 왕조의 창업과 흥업이 이 산의 영험하고 강력한 정기 덕분이었다는 민간의 전설이 결코 과장되지 않았음을 직감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도봉산은 단순히 '수도권의 가기 편한 산'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북한산과 우이령을 사이에 두고 약 5km 정도 떨어져 있어 늘 북한산의 연장선상으로 여겨지곤 했으나, 막상 산 안에 발을 디디면 북한산과는 전혀 다른 또 다른 느낌이 와닿습니다. 날카롭고 역동적이며 암릉미가 멋집니다. 도봉구의 명칭 자체가 이 산에서 유래했고, 도봉구의 휘장에도 선인봉, 자운봉, 만장봉의 삼봉(三峰)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을 만큼 지역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산이기도 합니다.
등산코스 안내 - 거대한 바윗길이 건네는 웅장한 위로
흔히 사람들은 도봉산이 서울 근교에 있고 대중교통이 워낙 편리하다 보니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하곤 합니다. 그러나 도봉산은 결코 만만히 볼 산이 아닙니다. 산행 난이도로 치면 산세가 거칠기로 유명한 관악산이나 북한산의 험한 코스들과 그 궤를 같이한다는 평을 받습니다. 북한산 백운대보다 100m가량 낮지만, 날카로운 화강암 슬랩과 직벽에 가까운 암릉 구간이 도처에 깔려 있어 실족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정상부 신선대에 도착하면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와 함께 과거의 사망 사례를 기록한 표지판이 서 있어 등산객들에게 엄숙한 경고를 보냅니다. 이러한 험준함이 역설적으로 도봉산의 최고 매력이 아닐까 합니다.
도봉산에는 37개의 전문 암벽등반 코스와 전문장비를 갖추지 않은 일반 등산개이라 하더라도 안전 난간을 잡고 아기자기한 바위 손맛을 즐길 수 있는 코스가 무궁무진합니다.
종주산행을 즐기는 산악인들 사이에서 지옥의 코스이자 영예의 코스인 불암산-수락산-사패산-도봉산-북한산(불수사도북) 강북 5산 연계종주산행의 핵심 분수령이 되는 산 역시 바로 도봉산입니다.
도봉산은 사방으로 코스가 뻗어 있어 들머리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산을 타는 듯한 신선함을 줍니다. 크게보면 도봉구 방면, 의정부 방면, 양주(송추) 방면의 세 갈래로 나눌 수 있다. 그중 가장 대중적인 정석코스는 도봉산역에서 시작하여 마당바위를 거쳐 신선대를 왕복하는 7km의 구간입니다. 이곳은 하산 길의 화려한 상권과 교통접근성이 극대화된 코스입니다.
의정부 방면으로는 망월사역에서 시작하여 원도봉게곡, 망월사를 거쳐 포대능선을 넘어가는 코스입니다. 초보자가 가기 가장 좋은 코스를 꼽으라고 한다면 회룡역에서 시작하여 회룡사, 그리고 사패산은 연계하는 코스입니다. 완만하게 잘 닦여있어 산책 삼아 다녀오기도 좋은 코스입니다. 양주 방면으로는 송추계곡에서 여성봉을 거쳐 오봉, 신선대까지 이어지는 중급코스가 있습니다. 독특한 기암괴석과 가을 단풍이 특히나 아름다운 코스입니다.
도봉산에서 가장 유명한 스팟중에 하나는 'Y계곡'입니다. Y계곡은 경사가 보통이 아니라서 온몸의 근육이 긴장을 하게 만듭니다. 코스 중에서 포대능선 정상에서 자운봉 방향으로 조금만 진행하면 악명 높은 Y계곡 초입에 서게 됩니다. 알파벳 'Y'자 모양으로 거대한 암벽 사잇길을 내려갔다가 거의 수직으로 다시 치고 올라와야 하는 도봉산 최고의 난코스입니다. 주말 및 공휴일은 정체와 안전의 문제로 정상인 신선대 방향으로의 일방통행만 진행하니 참고하셔야 합니다. 특히나 겨울철 눈이나 얼음이 잔류하는 계절에는 아이젠과 접지력 좋은 등산 장갑이 없으면 통과가 불가능할 정도로 위험합니다. 또한 폭이 좁은 틈새를 지나야 하므로 대형 배낭을 메고 있을 경우 바위틈에 걸려 중심을 잃을 수도 있으니 안전한 우회로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도봉산의 정상은 해발 740m인 자운봉 이지만, 수직 벽의 위험성 때문에 일반 등산객의 등반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바로 옆에 있는 해발 739.5m의 신선대가 실질적인 도봉산의 정상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팁
도봉산에는 산곳곳에서 마주치는 터줏대감 격인 길고양이들이 있습니다. 유독 도봉산에는 턱시도를 입은 듯한 검정고양이들과 노란 치즈 고양이들이 많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등산객들이 건네는 간식에 익숙해진 녀석들은 사람을 무서워하기보다 바스락 거리는 소리만 들려도 소리 주변으로 모여들어 앉습니다. 마치 '도봉산은 처음이지? 어서 와!'라고 눈빛으로 말을 하는 것 같습니다. 거친 암릉들을 타고 오르내리다, 이 귀여운 생명체들을 마주할 때면 긴장했던 마음이 무장해제 되며 미소가 절로 지어질 것입니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도봉산에 생기가 도는 봄이 오면, 진달래와 산벚꽃 덕분에 계곡 주변이 온통 분홍빛으로 물이 듭니다. 도봉산의 거칠고 우직한 화강암 암봉과 갓 돋아난 연두색 신록, 그리고 화사한 봄꽃의 대비는 한편의 수채화 같습니다.
어디나 여름 산행은 무덥고 고단하지만, 도봉산이라면 조금은 다를 것입니다. 도봉계곡과 망월사 계곡은 숲이 워낙 울창해서 햇빛을 가려줄 뿐만아니라 수량도 풍부합니다. 특히 비가 내린 직후에 방문하면 도봉계곡을 따라 쏟아지는 웅장한 폭포 소리가 압권입니다. 그늘진 숲길을 걸으며 계곡 바람을 맞으면 무더위는 금세 잊힙니다.
도봉산의 하이라이트를 딱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가을'이 아닐까 싶습니다. 선인봉, 만장봉, 자운봉 등 도봉산을 상징하는 거대한 봉우리들과 붉은 단풍이 어우러지는 풍경은 그야말로 압권입니다. 단풍시즌에는 도봉산에도 많은 등산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니 등산시간을 조금 빨리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겨울의 도봉산은 웅장함 그 자체입니다. 눈 덮인 거대한 암벽과 기암괴석들은 자연이 그린 거대한 산수화를 연상하게 합니다. 습도가 높은 날 포대능선 소나무 가지마다 피어나는 '상고대'는 매우 훌륭하고 황홀합니다.
에필로그
'도봉산이나 가볼까?' 하고 만만하게 봤다간 큰코다칩니다. 북한산 국립공원 전체 구간 중에서 사고가 가장 많이 나는 곳이 바로 도봉산입니다. 고난도 암벽 코스를 지날 때면 저도 팔다리 힘이 다 풀려서 너덜너덜해지고 진짜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무서웠습니다.
하산길은 거 친자갈모래를 밟고 제대로 된 이정표가 아닐 수 있는 곳들을 지나는데, 등산 어플이나 지도를 수시로 확인하면서 가는 게 좋습니다. 확실한 장비와 굳은 마음가짐만 있다면, 그 어떤 산보다 짜릿한 스필과 압도적인 절경이라는 확실한 '보상'을 주는 최고의 산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