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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대 명산 도장 깨기를 하다 보면 반드시 한 번은 마주치는 이름이 있습니다. 백덕산입니다. 해발 1,350m, 강원도 평창과 영월 경계에 걸쳐 있는 이 산은 "어느 코스로 가든 멀고, 정상 부근은 험하다"는 평이 등산 커뮤니티에서 꾸준히 나옵니다. 저도 오래 미뤄왔습니다. 결국 법흥사 코스로 직접 다녀왔고, 그 평판이 허언이 아님을 몸으로 확인했습니다. 정말 험했습니다.
법흥사 코스
백덕산 남서쪽 연화봉 아래에는 법흥사(法興寺)가 있습니다.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천년고찰로, 설악산 봉정암·오대산 상원사·영축산 통도사·태백산 정암사와 함께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중 하나로 꼽힙니다. 적멸보궁이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공간으로, 별도의 불상 없이 사리탑을 향해 예를 올리는 형태의 사찰을 말합니다. 경내에는 보물 제612호로 지정된 징효대사보인탑도 있어 역사·문화적 가치도 높습니다. 저는 이 법흥사 방향 코스를 한 번 시도한 적이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실수였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용하는 인증 최단코스가 아닌 새로운 길을 가보고 싶었던 건데, 등산로 정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수십 년 전에나 다닐 법한 희미한 흔적만 남아 있었고, 장마로 인한 산사태 흔적과 쓰러진 나무들이 경로를 알아볼 수 없게 만들어놓았습니다. 체력 소모가 정비된 코스의 배 이상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코스가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덕분에 무당들이 사용하던 제단 흔적도 발견했고, 태곳적 원시림(原始林)에 가까운 숲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원시림이란 인간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은 자연 상태의 숲을 의미합니다. 백덕산 주 계곡 쪽에 이런 자연림이 잘 보존되어 있다는 평가가 있는데, 직접 들어가 보니 그 말이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이 코스를 갈 계획이라면 충분한 준비 없이는 추천하기 어렵습니다. 한편, 정상에서 영월 방향으로 내려가면 법흥사계곡 쪽으로 하산하는 경로가 있는데, 중간에 신선바위라는 바위가 있습니다. 신선이 바둑을 두었다는 전설이 있는 넓은 평상형 바위로, 영월 방향 조망이 시원하게 열립니다. 다만 약 4m 높이의 이 바위는 줄을 잡고 올라가야 하는 구간이 있고, 2024년에 추락사고가 발생한 이력이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코스 난이도
백덕산은 해발 1,000m를 기점으로 산의 성격이 확연히 바뀝니다. 그 아래 구간은 숲길과 완만한 경사가 섞인 전형적인 강원 내륙 산 느낌이지만, 1,000m를 넘어서는 순간부터 너덜길이 본격적으로 등장합니다. 너덜길이란 크고 작은 바위와 돌이 사면에 넓게 깔린 구간을 말하는데, 발목 꺾임 위험이 높고 체력 소모가 평지의 두 배 이상이 됩니다. '백덕산 23번' 이정표 지점이 해발 1,000m입니다. 이 지점부터 너덜 구간이 간헐적으로가 아니라 거의 연속으로 이어집니다. 등산 안내도나 후기에서는 "정상 부근에만 너덜길이 있다"고 표현하는 경우도 있는데, 제가 직접 올라가보니 1,000m 구간부터 이미 본격적인 너덜이었습니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더 심해졌고요. 임도 교차점(해발 925m)을 지난 직후부터 경사가 무자비하다는 표현이 딱 맞을 만큼 가팔라집니다. 이 임도는 횡성 안흥 쪽에서 백덕산 자락을 약 20km 감싸는 임도의 일부로, 현재는 산악자전거 동호회나 겨울철 노르딕 스키·썰매 이용자들이 주로 쓰는 구간입니다. 등산객 입장에서는 그냥 '본격 깔딱의 시작 신호'에 가깝습니다. 등산 중 살모사를 만났습니다. 등산로 한가운데 또아리를 틀고 앉아 있었는데, 사람을 피할 기색이 전혀 없었습니다. 강원도 깊은 산에서는 드물지 않은 일이지만, 해발 1,000m 너덜 구간에서 발밑을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 뱀까지 등장하니 긴장도가 배가 되었습니다. 산림청에서도 이 구간의 위험 요소로 바위 지형과 야생동물 출몰을 안내하고 있습니다(출처: 산림청). 헬기장에서 오른쪽이 정상 방향입니다. 헬기장을 지나면서부터 암릉(巖稜) 구간이 시작됩니다. 암릉이란 바위와 능선이 결합된 지형으로, 손과 발을 함께 써야 하는 구간이 반복됩니다. 특히 해발 1,250~1,300m 사이에서 고도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구간이 이어지는데, 저는 이 구간에서 쓰러진 나무 아래를 통과하다가 발이 엉켜 심하게 넘어졌습니다. 정상까지 0.5km를 남겨두고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백덕산 등산코스 핵심 포인트
- 최단 운교리/비네소골 코스(왕복 7.5km, 3시간) 운교1리 마을회관/비네소골 들머리 → 임도 → 작은당재 → 서울대나무 삼거리 → 백덕산 정상 → 원점회귀
- 문재쉼터 원점회귀 코스(왕복 13km, 5시간) 문재쉼터 → 임도 → 헬기장 → 사자산(우회) → 당재 → 작은당재 → 서울대나무 → 백덕산 정상 → 원점회귀
- 법흥사 코스 (약 11키로, 5시간) 법흥사 입구 → 흥원사 → 고인돌바위 → 촛대바위 → 신선봉 → 백덕산 정상 → 원점회귀
서울대 나무와 정상 조망

정상 직전에 백덕산의 랜드마크가 하나 있습니다. 등산객들이 '서울대 나무'라고 부르는 소나무입니다. 소나무 가지가 서울대학교 마크 형태를 자연스럽게 만들어내는데, 인위적으로 조경한 것처럼 보일 만큼 그 형태가 뚜렷합니다. 험난한 암릉 구간을 지나 이 나무를 마주치는 순간, 잠깐이지만 긴장이 풀립니다. 저도 모르게 멈춰서 한참을 들여다봤습니다. 정상(해발 1,350m)에서의 조망은 이 산이 왜 100대 명산에 선정되었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동쪽으로는 가리왕산이 웅장하게 펼쳐지고, 청옥산 방향과 육백마지기 풍력발전단지의 풍차들도 확인됩니다. 정상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치악산 비로봉의 뾰족한 실루엣도 날씨가 좋은 날에는 뚜렷하게 보인다고 합니다. 백덕산의 이름 자체가 '겨울에 내린 하얀 눈이 봄까지 산봉우리를 덕스럽게 덮고 있다'는 데서 유래했을 만큼, 이 산은 사계절 눈과 구름이 머무는 고산 지형입니다. 능선 곳곳에 절벽성 바위와 기암괴석이 솟아 있고, 그 바위 틈에서 굽어 자라는 소나무들이 독특한 경관을 만들어냅니다. 전체적으로는 숲산 느낌이지만, 정상부와 능선에서는 의외로 암릉산 느낌이 강하게 납니다. 태백산맥 계열 산지 특유의 깊은 계곡과 넓은 능선을 동시에 갖추고 있어, 단순히 육산이라고만 볼 수 없는 입체적인 산입니다. 산림청이 백덕산을 100대 명산으로 선정한 이유 중 하나로 평창강과 주천강 수계의 발원지 역할을 하는 지형적 가치를 꼽은 것도 이 맥락에서 이해가 됩니다(출처: 산림청 100대 명산).
자주 묻는 질문
Q. 백덕산 운교리 코스와 문재 코스 중 어느 쪽이 더 힘든가요?
A. 운교리 비네소골 코스가 더 가파릅니다. 문재 코스는 출발점이 해발 750m로 높아 거리가 길지만 경사가 완만한 편이고, 운교리 코스는 출발점이 550m로 낮아 같은 정상을 오르면서 고도 상승폭이 200m 더 큽니다. 거리는 짧아도 체감 난이도는 운교리 쪽이 높습니다. 제가 직접 비교해본 결과, 임도 이후 구간의 경사 강도는 운교리 쪽이 훨씬 가혹했습니다.
Q. 백덕산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나요?
A.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안흥을 경유해 평창·정선 방향 버스를 타면 운교리에서 하차할 수 있습니다. 단, 문재 코스는 버스가 정차하지 않으므로 대중교통 이용 시 실질적으로 운교리 코스가 유일한 선택지입니다. 운교리 마을회관 옆에 주차 공간이 있지만 등산객이 많은 성수기에는 주차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이른 출발을 권장합니다.
Q. 백덕산 법흥사 코스는 초보자도 갈 수 있나요?
A. 제 경험상 법흥사 방향 비정비 코스는 초보자에게 권하기 어렵습니다. 정상에서 영월 방향으로 내려가 법흥사계곡 쪽으로 하산하는 루트는 경험자도 신선바위 구간에서 주의가 필요합니다. 2024년 이 구간에서 추락사고가 있었던 만큼, 충분한 암릉 경험과 안전 장비 없이 진입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Q. 백덕산 정상에서 조망이 실제로 좋은가요?
A. 날씨가 좋은 날에는 꽤 좋습니다. 가리왕산, 청옥산, 육백마지기 풍차 방향이 동쪽으로 펼쳐지고, 서쪽으로는 치악산 비로봉의 실루엣도 보입니다. 다만 백덕산이 '조망 없는 산'이라는 평도 있는데, 이는 능선 숲 구간이 길고 중간 조망처가 거의 없어서 정상 이외 구간에서는 시야가 제한된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정상 조망만큼은 그 험한 과정을 보상해줄 만했습니다.
에필로그
백덕산은 100대 명산 중에서 가성비 좋은 산이라고는 말하기 힘듭니다. 어느 코스를 택해도 거리가 길고, 해발 1,000m 이상 구간은 너덜길과 암릉이 연속되며, 중간 조망처도 드뭅니다. 제가 직접 다녀온 소감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준비 없이 가면 밀린 숙제 같은 산"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가야 한다면 그나마 최단코스인 비네소골 코스로 올라 정상 조망을 확인하고 동일 경로로 하산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안정적인 선택으로 보입니다. 법흥사 방향 코스는 등산로 정비가 많이 미흡하여 어느정도 경험과 체력을 기른다음에 가는것이 좋습니다.. 겨울 설경 산행을 노린다면 평창강·주천강 수계를 발원하는 이 산의 적설량이 상당하다는 점은 분명 매력 포인트입니다. 서울대 나무, 가리왕산 조망, 그리고 5대 적멸보궁 법흥사까지. 이 세 가지를 한 번에 잇는 종주 루트가 언젠가 정비된다면, 백덕산의 평판은 지금과 꽤 달라질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