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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산> 한국의 100대 명산, 등산코스 안내, 산행 팁

by bosalnim 2026. 6. 26.

용문산 가섭봉 정상

 

등산가들 사이에서‘수도권의 숨은 지옥, 혹은 이름 그대로 '욕문산이라 불리는 산이 있습니다. 경기도 양평군에 웅장하게 서있는 해발 1,157m의 용문산(龍門山)입니다. 화악산(1,468m), 명지산(1,267m), 국망봉(1,168m)에 이어 경기도에서 네 번째로 높은 고봉입니다. 이 산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타 본 사람이라면 알 것입니다. 경기도에 위치해 있다는 지리적 접근성이나 국민관광지라는 대중적인 타이틀이 주는 막연한 편안함 뒤에는, 날카로운 규암 암릉과 자비 없는 경사도로 무장한 거친 '골산(骨山)'의 야성이 숨어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인간의 발길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도도함, 그러나 정상에 섰을 때 펼쳐지는 압도적인 한반도의 등줄기를 말할 때 종종 용문산을 언급하곤 합니다.

한국의 100대 명산 <용문산> - 갈망과 두려움의 공존

용문산의 옛 이름은 '미지산(彌智山)'이었습니다.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른 후 '용문산'으로 개칭했다는 전설이 내려오지만, 언어학적이나 역사적으로 깊이 들어가 보면 두 이름은 결국 하나의 본질을 향하고 있습니다. 옛말에서'미지(彌智)'는 '미리(彌里)'의 고형이며, 이는 용을 뜻하는 순우리말 '미르'의 방언적 변형입니다. 즉, 이름만 바뀌었을 뿐 미지산과 용문산은 모두 '룡(龍)이 머무는 신령스러운 산'이라는 뜻을 공유합니다. 막연히 서울 근교의 산이라 생각하고 트레일 러닝화나 가벼운 단화를 신고 왔다간 큰코다치기 십상입니다. 용문산은 한반도의 거대한 정맥 축에서 살짝 벗어나 독립적인 거대 산군(山群)을 형성하고 있는데, 지형지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불교의 만(卍)자나 열 십(十)자 형태로 사방으로 거대한 능선이 발달해 있습니다. 이 외에도 용문봉의 진등능선, 중원산 능선, 어비산, 대부산 등이 촘촘하게 얽혀 있어 하나의 거대한 '용문산 복합체(Yongmunsan Massif)'를 이루고 있습니다. 특히 동쪽 사면은 차돌이라 불리는 매끄럽고 날카로운 규암 지대로 이루어져 있어 지반이 단단하면서도 대단히 미끄럽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용문산 용문사코스를 오를 때마다 속으로 수없이 숫자를 세며 숨을 고릅니다. '왜 이산은 완만한 완충 지대가 단 1도 없을까'라는 원망섞인 한탄이 절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산의 절대높이보다 중요한 것은 들머리와 정상의 고도차이입니다. 용문산 관광단지 매표소 인근의 해발 고도는 약 150m에 불과합니다. 즉, 가섭봉 정상까지 가려면 순수하게 고도 1,000m 이상을 치고 올라가야 합니다. 이는 국립공원 중 험하기로 소문난 설악산이나 지리산의 일부 코스, 혹은 소백산 등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수치입니다. 경기도 내에서는 명지산 정도를 제외하면 이만한 고도차를 가파르게 올려치는 산이 없습니다.

등산코스 안내

용문사에서 출발해 상원사 갈림길을 지나 능선으로 붙든, 마당바위를 거쳐 계곡길(용각골)로 가든 편안한 흙길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만약 이 용문산의 거친 매력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고행(苦行)의 산행보다, 블랙야크 100대 명산 인증과 시원한 조망이라는 실리적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 용문사 코스는 최악의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땀은 비 오듯 흘렸는데 정상에 도달했을 때 사방이 안개로 가득 찬 일명 곰탕을 마주한다면 그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것입니다. 이럴 때는 차량을 이용한 '용천스카이밸리(배너미고개)'최단 코스를 추천합니다. 옥천면 용천리 방면에서 차를 몰고 고도를 약 900m 부근까지 올린 뒤, 공군 제8145부대 진입 군사도로 차단기 인근에 주차하고 걸어 오르는 방식입니다. 부지런히 걸으면 왕복 2시간에서 2시간 반 내외로 가섭봉을 접수할 수 있습니다. 또 용문사 코스가 너무 대중적이고 상업화되어 싫증이 난다면, 옥천면의 사나사(舍那寺) 기점 코스로 눈을 돌려보는 것도 좋습니다. 이쪽은 거친 암릉 비중이 적고 흙산(육산)의 부드러움이 혼재되어 있어 사색을 즐기기에 아주 좋습니다. 사나사 기점에는 총 4개의 코스(구름재, 함왕성지, 883봉, 함왕봉 코스)가 존재하는데, 제가 가장 애정하는 경로는 함왕성지 코스입니다. 지능선을 타고 오르다 보면 고려 시대 골산의 천연 요새를 활용해 돌을 쌓아 만들었던 함왕성의 서문터와 흔적들이 등산로 좌측으로 내내 이어집니다. 능선 안부에 합류한 뒤 남쪽으로 5분만 걸어가면 만날 수 있는 암봉에서의 조망은 가섭봉 정상보다 훨씬 훌륭합니다. 용문산 정상에서부터 뾰족하게 솟아오른 '한국의 마터호른'백운봉까지 이어지는 웅장한 서남릉의 실루엣을 한눈에 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과 체력이 허락하는 진정한 건각이라면 용문산자연휴양림이나 쉬자파크에서 출발해 두리봉, 백운봉을 거쳐 장군봉, 가섭봉을 찍고 용문사로 떨어지는 약 12km의 서남릉 대종주 코스에 도전해도 좋습니다. 비록 매끄러운 차돌 암릉과 날카로운 바위 너덜길 때문에 일반적인 육산 종주보다 체력 소모가 1.5배는 더 심하지만, 경기 남동부의 제왕이 가진 진면목을 뼛속 깊이 새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국립공원의 잘 정비된 데크 계단과 야자매트에 익숙해진 등산객들에게 용문산의 등산로는 '전혀 정비되어 있지 않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거칠다고 생각될 것입니다. 지자체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한정된 예산과 인력(정원산림과)으로는 이 방대한 산군을 국립공원 수준으로 상시 정비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등산화 및 스틱 등 안전장구를 꼭 준비하셔야 부상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산행 팁

수많은 산행을 통해 뼈저리게 느낀 용문산의 사계는 철마다 피워내는 시각적, 청각적 자극이 인간의 근원적인 미적 감각을 뒤흔듭니다. 5월 초순 봄의 용문산은 세포를 깨우는 연두색의 도가니입니다. 일주문에서 용문사로 향하는 길목에 화사하게 피어나는 벚꽃과 진달래를 지나 등산로 서포트에 들어서면, 거친 규암 바위 틈새로 돋아나는 여린 신록들이 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습니다. 험난한 오르막 속에서 불어오는 싱그러운 봄바람은 깔딱고개의 고통을 아주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마약과 같습니다. 여름 장마철 직후 수량이 풍부해진 함왕골(사나사계곡)과 용각골은 경기도 내에서 가장 원시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계곡입니다. 울창한 활엽수림이 하늘을 가려 거대한 초록 터널을 만들고, 그 사이로 집채만 한 바위들을 때리며 쏟아지는 물줄기는 정말로 장관입니다. 해발 600m 이상의 상류에서 만나는 계곡물은 한여름에도 온몸이 얼어붙을 정도로 차갑습니다. 하지만 정상부의 습도는 가히 살인적이어서, 땀으로 온몸과 배낭이 절어버리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극단적인 계절이기도 합니다. 용문산의 가을은 단연 용문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0호)가 황금빛으로 번지는 10월 하순에 절정을 맞이합니다. 나이가 무려 100세를 넘긴 높이 42m, 둘레 14m의 이 거대한 생명체 앞에 서면 일종의 종교적 경외감마저 듭니다. 영국사 은행나무 등 전국의 내로라하는 노거수들을 보았지만, 용문사 은행나무의 압도적인 용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이 시기에는 황금색 은행나무와 계곡 주변을 물들이는 붉은 단풍, 그리고 가섭봉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가을 남한강의 푸른 물줄기는 경기의 금강산이라는 별칭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증명합니다. 경기 동부 고산 지대 특유의 엄청난 적설량 덕분에 겨울의 용문산은 거대한 은빛 성채로 변모합니다. 매서운 칼바람을 맞으며 동남릉을 오르다 보면 나뭇가지마다 피어난 정교한 상고대가 보입니다. 용문사 대웅전 앞, 모든 잎을 떨군 채 거대한 뼈대만으로 눈꽃을 받아내고 있는 은빛 은행나무의 실루엣은 장엄함의 극치입니다.

에필로그 - 이기려 하지 말고 그저 동화되라

용문산은 방문객 수 대비 산악 사고 발생 비율과 사망률이 국내 최상위권에 속하는 대단히 위험한 산입니다. 험준한 산세에 비해 등산로의 정비도가 낮고, 갑작스러운 기상 변화와 실족 위험 구역이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에도 겨울철 기온 저하로 인한 고립 사망 사고, 급경사지에서의 실족 추락사, 심지어 실종 후 수개월 만에 백골 상태로 발견된 안타까운 사고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전문 산악인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해발 947m의 용문봉 코스나 해발 631m의 용조봉 코스는 실질적인 '금단의 영역'입니다. 로프나 안전 난간이 전무한, 좌우가 수백 미터 낭떠러지인 칼날 암릉이 이어지는데, 마치 설악산의 용아장성을 축소해 놓은 듯한 공포감을 주므로 숙련자가 아니라면 절대 진입하지 마시길 권해드립니다. 위 얘기처럼 용문산은 결코 친절한 산이 아닙니다. 힘들기는 엄청 힘든데 국립공원 같은 수려한 인프라나 대피소도 없고, 정상 조망마저도 과거 군사 시설과 방송·통신탑에 가려져 다소 제한적입니다. 날씨가 조금만 심술을 부리면 지독한 안개로 산객의 눈을 가려버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왜 매번 이 가파른 돌계단에 다시 발을 디디는가에 대한 대답은 이 산이 인간에게 주는 '겸손의 가르침'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천년의 세월을 버텨낸 은행나무의 침묵 앞에서, 그리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급경사의 고통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자연의 거대함을 배우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운 좋게 하늘이 열리는 날이면 멀리 원주의 치악산, 평창의 계방산과 발왕산, 심지어 가시거리가 극한으로 좋은 날에는 설악산 대청봉과 북한의 금강산 자락까지 조망할 수 있는 천상의 뷰를 선사하는 산. 용문산으로 떠날 때는 욕심을 버리고, 철저한 안전 장비와 겸손한 마음가짐만을 배낭에 채웠으면 합니다. 자연은 결코 정복하는 대상이 아닙니다. 그 거친 품속에 잠시 동화되어 땀을 흘리는 것, 그것이 욕문산이라 불리는 이 위대한 미지산이 우리에게 허락한 최고의 사치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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