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대 명산 중에 이렇게 낮은 산이 몇 개나 될까 싶을 정도로 해발 381m의 용봉산은 반신반의한 산입니다. 이러한 맘을 안고 직접 올라가 보니 높이와 100대 명산 타이틀은 상관이 없구나 싶었습니다. 이 사실을 능선에 올라서고 10분이 지나서 바로 깨닫게 되는 마술. 충남 홍성의 용봉산, 수백 장의 한국화를 한꺼번에 넘기는 듯한 산이었습니다.
한국의 100대 명산 <용봉산> - 300m대 산이 100대 명산?
용봉산은 블랙야크 선정 대한민국 100대 명산 중 해발고도가 세번째로 낮은 산입니다. 327m의 홍천 팔봉산, 335m의 고창 선운산에 이어 381m로 그 뒤를 잇습니다. 여기서 블랙야크 100대 명산은 높이만으로 줄 세우는 게 아니라 산세, 역사성, 조망 등을 기준으로 선정하는데, 그 기준에 매우 적합한 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리학적으로 용봉산은 차령산맥의 말단부에 해당하며, 백두대간에서 갈라진 금북정맥이 가야산을 거쳐 덕숭산으로 이어지고 그 기운이 홍성 쪽으로 뻗어 나온 끝에 형성된 산입니다. 금북정맥이란 금강 북쪽 줄기를 따라 이어지는 산맥 구조를 뜻하며, 이 지맥의 특성상 용봉산은 낮지만 산세가 입체적이고 바위가 거친 형태를 가지게 됩니다. 예산의 덕숭산과 마주 보며 충남도청이 있는 내보신도시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어 '내포의 진산'이라고도 불립니다.
등산코스 안내 - 암릉코스가 답이다

저는 용봉산 자연휴양림 쪽에서 출발해서 최영 장군 활터를 거쳐 정상(최고봉)에 오른 뒤, 노적봉과 악귀봉을 지나 원점 회귀하는 코스를 탔습니다. 출발하고 5분도 안 됐는데 눈앞이 탁 트인 조망을 비춰줍니다. 내포신도시의 아파트 군락과 그 뒤로 펼쳐지는 충남의 평야, 그리고 바로 발아래 기암이 뒤엉킨 능선. 이게 같은 화면에 담기는 게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기암괴석이 코앞에 즐비한데 고개를 돌리면 현대식 아파트가 보이는 그 대비감도 나름 볼만했습니다.
용봉산의 핵심은 암릉입니다. 직접 암릉을 타고 넘어보니 이 암릉 구간이 짧은 거리 안에 집약적으로 몰려 있어서 체감 만족도가 훨씬 높았습니다. 투석봉, 책바위, 노적봉, 솟대바위, 행운바위, 엄지바위, 물개바위, 악귀봉, 삽살개바위, 병풍바위, 용바위 같은 기암들이 능선 따라 줄지어 등장하는 구조입니다.
흔들바위는 이름 그대로였습니다. 바위 위에 또 다른 바위가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모습인데, 제가 지금까지 본 흔들바위 중 가장 그 이름에 걸맞는 모양이었습니다. 행운바위 앞에서는 작은 돌을 던져 위에 얹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세 번 만에 성공했는데, 그 사소한 성취감이 또 산행의 재미를 더했습니다.
- 해발 381m, 블랙야크 100대 명산 중 고도 세 번째로 낮은 산
- 암릉 구간 : 투석봉 - 노적봉 - 악귀봉 - 병풍바위 - 용바위 등 기암 연속 등장
- 자연휴양림 코스 기준 전체 산행 약 3시간 전후 소요
- 조망포인트 : 최영 장군 활터, 노적봉, 악귀봉에서 내포신도시/예당평야/덕숭산 조망 가능
정상에서 노적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구간이 이 산의 하이라이트라는 말을 출발 전에 들었는데, 그 말이 맞았습니다. 해발 351m의 노적봉은 수많은 볏짚 단을 쌓아 놓은 형상이라는 데서 이름이 붙었습니다. 노적봉이란 군량이나 곡식을 쌓아놓은 형태를 닮은 봉우리에 붙이는 이름으로, 우리나라 여러 산에 같은 이름의 봉우리가 많습니다. 노적봉에 올라서 있을 때는 사실 그 형태가 잘 안 보입니다. 악귀봉 쪽으로 조금 이동한 뒤 뒤를 돌아봤을 때 비로소 "아, 이래서 노적봉이구나"싶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렇게 멀어져야 비로소 전모가 보이는 봉우리는 오히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악귀봉은 이름과 달리 무섭지 않습니다. 날카로운 바위 능선 위에 올라서 있다는 느낌이 강하고, 봉우리 아래쪽에 물개바위가 있어서 코와 입의 윤곽이 보이는 게 꽤 재미있었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진짜로 강아지 얼굴 같기도 합니다.
산행 팁
산행 내내 이어지는 조망 포인트는 용봉산이 '충남의 금강산'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체감하게 합니다. 용봉산은 낮은 산임에도 능선 곳곳에서 거의 끊김 없이 조망이 열려 있어 산행 내내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이 점이 단순한 숲 산행과 가장 크게 차별화 되는 부분이었습니다.

- 최영 장군 활터는 고려 말 명장 최영 장군이 소년기에 활쏘기를 연마하던 장소입니다. 팔각정이 세워져있고 그늘과 바람이 좋아서 잠시 쉬어가기 딱 좋은 자리였습니다. 100년 수령의 옆으로 자란 소나무도 이 산의 보물 중 하나로, 데크 로드를 소나무와 떨어뜨려 설치해 보호하고 있습니다. 산은 즐기되 건드리지 않는다는 원칙이 여기에서도 느껴졌습니다.
- 용봉산 정상의 이름은 특이하게도 그냥 '최고봉'입니다. 따로 이름 붙일 필요가 없었던 건지, 아니면 가장 솔직한 이름을 택한 건지 모르겠지만, 정상석을 보는 순간 뭔가 웃음이 나왔습니다. 최고봉에 서면 예당평야, 덕숭산, 서산 가야산 방향까지 시야가 열립니다. 날씨가 맑은 날에는 능선들이 겹겹이 쌓이는 모습이 수묵화처럼 보인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갔던 날이 마침 가시거리가 좋은 날이었는데, 실제로 먼 산 능선이 층층이 겹쳐 보이는 장면은 카메라에 다 안 담기는 게 아쉬울 정도였습니다.
- 용봉산은 안내산악회에서 인근 예산의 덕숭산과 묶어서 1일2산 프로그램으로 자주 운영한다고 합니다. 두 산을 하루에 소화할 수 있을 만큼 각각 부담이 없으면서도, 둘 다 개성이 뚜렷해서 함께 묶으면 충남 산행의 정수를 한 번에 경험할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A>
Q : 용봉산 등산 초보자도 오를 수 있나요?
A : 충분히 가능합니다. 해발 381m로 높이 부담이 적고 전체 코스도 3~4시간 안에 소화됩니다. 다만 암릉 구간이 중간중간 섞여 있어서 미끄럼 방지가 잘 되는 등산화를 신는 편이 훨씬 안전합니다. 제가 직접 걸어보니 체감 난이도는 고도 수치보다 한 단계 높습니다.
Q : 용봉산 주차는 어디에 하나요? 유료인가요?
A : 용봉산 자연휴양림 주차장을 이용하면 주차비는 무료입니다. 단, 주차 공간이 넉넉하지 않아서 주말 오전 일찍 도착하지 않으면 자리 잡기가 빠듯할 수 있습니다. 휴양림 입장료도 무료입니다.
Q : 용봉산 추천 코스는 어떻게 되나요?
A : 제가 다녀온 코스 기준으로는 자연휴양림 출발 → 최영 장군 활터 → 최고봉(정상) → 노적봉 → 악귀봉 → 구룡대 매표소 → 자연휴양림 원점 회귀 순서를 추천합니다. 정상 이후 노적봉, 악귀봉 구간이 산의 하이라이트이므로 이 순서를 지키는 게 만족도가 높습니다. 전체 소요시간은 약 3시간 전후입니다. 단지 인증을 위해서라면 정상까지만 갔다가 하산을 하면 1시간 30분 내외로 가능한데 추천하지 않습니다.
Q : 용봉산은 어느 계절에 가는 게 좋나요?
A : 기암괴석이 메인인 산이라 사계절 모두 각기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제가 갔을 때는 초록이 짙어지는 시기였는데, 바위와 나무가 대비되는 풍경이 무척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단풍이 드는 가을이 암릉과 색감의 조화가 가장 뛰어날 것 같습니다. 여름에는 능선 위 바람이 시원해서 생각보다 쾌적하게 산행할 수 있습니다.
Q : 용봉산에서 덕숭산까지 1일 2산이 가능한가요?
A : 네, 두 산 모두 400m 이하의 높이라 체력 소모가 적고 인접해 있어 1일 2산 코스로 자주 묶입니다. 안내산악회에서도 이 조합을 정기 프로그램으로 운영할 정도입니다. 다만 두 산 모두 암릉 구간이 있으므로 컨디션이 좋은 날 시도하는 것이 좋고, 산행 시작 시각을 오전 일찍 잡는 편이 여유롭습니다.
에필로그

용봉산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짧고 굵은 산'입니다. 381m라는 수치를 보고 가벼이 여겼다가 능선 위에서 완전히 생각이 바뀌는 그런 산입니다. 바위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면 작은 설악산을 옮겨다 놓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데, 그 풍경이 3~4시간 안에 압축되어 펼쳐집니다. 용봉산은 이제 막 산을 시작한 분이나 암릉 산행을 즐기는 분, 가성비 좋은 산을 찾는 분께도 두루 권하고 싶은 산입니다. 하산하면서 가을 단풍 시즌에 한 번 더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히 용봉산을 추천할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