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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보다 경치가 낫다고 했던 산이 있습니다. 조선 실학자 이중환이 《택리지》에 남긴 말인데, 솔직히 처음 들었을 때 반신반의했습니다. 높이 해발984m, 100대 명산 청화산. 늘재에서 출발해 정국기원단을 거쳐 정상까지 다녀온 뒤, 그 말이 허언이 아니었다는 걸 제 두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청화산이 100대 명산인 이유
청화산이라는 이름,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한자로 풀면 '푸를 청(靑), 빛날 화(華)'입니다. 산죽(조릿대) 군락지와 소나무가 산 전체를 뒤덮고 있어서 한겨울에도 푸르게 빛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여기서 산죽이란, 대나무과에 속하는 낮은 키의 조릿대를 말하는데, 잎이 지지 않고 사철 초록을 유지하는 덕분에 능선 전체가 언제나 싱그러운 색감을 띕니다. 이 산이 대한민국 100대 명산에 선정된 데는 단순히 높이 때문만은 아닙니다. 청화산은 백두대간(白頭大幹)의 핵심 구간 위에 솟아 있습니다. 백두대간이란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우리나라 산줄기의 중심 뼈대를 의미하며, 한강 수계와 낙동강 수계를 가르는 분수령이 바로 이 능선 위에 있습니다.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문경시 농암면 세 지역의 경계를 동시에 이루는 위치이기도 합니다.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앞뒷면의 경치가 지극히 좋음은 속리산보다 낫다"고 한 말은, 능선에 올라서 직접 사방을 바라보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늘재를 사이에 두고 속리산 문장대와 마주 보는 구도 자체가 이미 한 폭의 그림입니다. 제가 직접 능선에 서 봤는데, 문장대가 그냥 눈앞에 액자처럼 들어오는 순간 카메라를 꺼내는 것도 잊을 뻔했습니다.
- 위치: 충북 괴산군 청천면 / 경북 상주시 화북면 / 문경시 농암면 3개 시군 경계
- 높이: 984m, 대한민국 100대 명산 선정
- 특징: 백두대간 핵심 구간, 한강·낙동강 분수령 위에 위치
- 이름의 유래: 산죽 군락지와 소나무로 사철 푸른 빛을 유지
- 조망: 속리산 문장대, 조항산, 화양동계곡, 용유동계곡 조망 가능
늘재 최단코스 VS 원적사 최단코스
늘재코스와 원적사 코스는 청화산 단독 산행에서 가장 많이 이용되는 최단 루트입니다. 늘재(해발 380m)에서 정상까지 약 2.3km 거리로, 왕복 2시간 30분에서 3시간 안팎이면 마무리됩니다. 원적사 코스는 왕복 4km 입니다. 제가 직접 걸어봤을 때 두 코스 모두 원점회귀 포함 총 2시간 30분이 걸렸습니다. 늘재 코스의 초입은 생각보다 순합니다. 코코넛 매트가 깔린 폭신한 흙길이 한동안 이어지고, 경사도도 완만해서 발걸음을 맞추며 하체를 예열하기에 딱 좋은 구간입니다. 15~20분 정도 걸으면 정국기원단에 닿습니다. 정국기원단이란, 청화산 농원 측에서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며 세운 석조 구조물인데, 그 뒤편으로 속리산국립공원의 능선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산행 30분도 안 돼서 이 정도 조망을 준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문제는 정국기원단을 지나면서 시작됩니다. 경사도가 갑자기 달라집니다. 나무 뿌리와 거친 바위가 뒤섞인 길이 계속 이어지고, 중간에 밧줄 구간도 하나 나옵니다. 이 암릉 구간이 늘재코스에서 가장 주의가 필요한 지점입니다. 암릉이란 바위가 능선을 이루는 구간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직벽을 타는 건 아니고 밧줄을 잡고 경사를 오르는 수준입니다. 그래도 젖은 날씨라면 미끄러우니 손을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상 직전 100m 구간의 경사가 이 코스에서 가장 가팠습니다. 다리보다 폐가 먼저 항복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오후 5시쯤 정상에 올라섰을 때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서 능선 너머로 노을빛이 번지고 있었는데, 그 장면 하나로 올라오느라 힘들었던 기억이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추천하는 사진포인트
청화산 정상에서 탁 트인 파노라마를 기대하셨다면, 조금 솔직히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정상부는 사방이 나무로 둘러싸여 있어서 시야가 사방으로 열리지는 않습니다. 대신 특정 방향으로는 속리산 방면 능선이 보이는 포인트가 있고, 헬기장 주변이 그나마 가장 넓게 트입니다. 정상석은 생각보다 작고 아담합니다. 처음 보면 이게 정상석인가 싶을 정도라, 꼼꼼히 살펴보셔야 합니다.
오히려 진짜 뷰포인트는 능선 구간, 그리고 정국기원단 뒤편입니다. 정국기원단 뒤로 펼쳐지는 속리산 능선 구도는 마치 액자에 담긴 그림 같아서, 제가 그 자리에서 한참을 멈춰 서 있었습니다. 오르내리는 길 내내 능선 위에서 잠깐씩 트이는 조망 포인트들이 산행의 재미를 높여줍니다. 어느 순간 나무 틈 사이로 상주 화북면 쪽 들판이 확 펼쳐지는데, 그 시원함이 급경사의 고생을 잊게 합니다.
우복동천길(牛腹洞天길)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우복동천길이란 경북 상주시 화북면 일대의 명당 지형인 '우복동(牛腹洞)'을 따라 조성된 국내 최장 원점회귀 등산 코스로, 총 37.8km에 달합니다. 청화산은 이 우복동천길의 주요 경유지이자 백두대간 종주 구간과 겹치기 때문에, 능선 위에서 만나는 이정표의 방향들이 단순한 산 하나가 아닌 훨씬 넓은 산줄기 속에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출처: 상주시청).
조항산 연계 VS 청화산 단독 산행
청화산만 목표로 하면 늘재에서 원점회귀하는 코스로 충분히 하루 산행을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정상에서 능선 건너를 바라봤을 때, 솔직히 조항산이 더 눈에 들어왔습니다. 험하게 생긴 바위덩어리 봉우리가 능선 너머에 떡하니 서 있는데, 그 생김새가 청화산의 부드러운 능선과 대비되어 오히려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실제로 늘재에서 출발해 청화산을 거쳐 조항산까지 이어지는 능선 종주, 그리고 송면저수지로 하산하는 코스는 하루 종일 다양한 산세를 경험할 수 있는 루트입니다. 조항산은 겉모습만 험하고, 실제로는 바위 뒤편을 우회해 올라가는 방식이라 직벽 등반이 아닙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라고 미리 말씀드리고 싶었던 부분이 바로 이겁니다. 보기에 무서운데 실제로는 그 이상으로 위험하지는 않습니다. 반면 청화산만 오기에는 늘재코스가 조금 싱거울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 경우에는 인근 대야산과 하루에 두 산을 묶는 1일 2산 조합도 좋은 선택입니다. 대야산은 괴산 쪽에서 접근이 쉽고, 청화산과 산세 느낌이 달라서 하루에 두 가지 색의 산을 경험하는 재미가 있습니다(출처: 산림청 국가산림문화자산). 참고로, 청화산 산기슭에는 육송정(六松亭)이라 불리는 반송이 있습니다. 육송정이란 같은 뿌리에서 여섯 그루의 소나무가 뻗어 자라는 천연기념물 292호 반송을 말하며, 경북 농암면 비치마을 입구에 위치해 있습니다. 한때 청천면 삼송리에도 용송(천연기념물 290호)이 있었으나, 2012년 태풍 볼라벤으로 쓰러져 2014년 천연기념물 지정이 해제되었습니다. 산행 전 이 내력을 알고 가면 산기슭 풍경이 또 다르게 읽힙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청화산 원적사 코스 주차는 어디에 하나요?
A. 원적사 주차장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7~8대 정도 주차 가능한 소규모 공간이라 주말에는 일찍 도착하는 편이 낫습니다.
Q. 청화산 정상에서 속리산이 보이나요?
A. 정상부는 나무로 둘러싸여 있어 360도 파노라마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속리산 문장대 조망은 정상보다 오히려 능선 구간과 정국기원단 뒤편에서 더 잘 보입니다. 날씨가 맑은 날에는 화양동계곡과 용유동계곡도 발 아래로 내려다보입니다.
Q. 청화산 난이도는 어느 정도인가요? 초보자도 괜찮나요?
A. 늘재코스 기준 전체 난이도는 중급 정도입니다. 초입 완만한 구간은 초보자도 어렵지 않지만, 정국기원단 이후 급경사와 암릉 밧줄 구간에서 체력 소모가 상당합니다. 등산화와 무릎 보호대 착용을 권장하며, 왕복 3시간 여유 있게 계획하는 것이 좋습니다.
Q. 청화산과 조항산 연계 산행은 얼마나 걸리나요?
A. 늘재 출발 기준으로 청화산과 조항산을 거쳐 송면저수지로 하산하는 코스는 체력과 페이스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 5~7시간 전후로 봅니다. 능선과 봉우리, 계곡과 저수지를 모두 경험할 수 있는 종주형 코스로, 체감 난도는 중상급입니다.
에필로그

청화산은 화려하게 내세우는 산이 아닙니다. 정상석도 작고 아담하고, 정상에서 탁 트인 조망을 기대하면 살짝 당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능선을 걷는 내내 느껴지는 분위기, 정국기원단 뒤로 열리는 속리산 능선, 산죽 군락지 사이로 이어지는 흙길은 생각보다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이중환이 그냥 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늘재코스나 원적사코스를 최단 루트로 이용하되, 조항산 연계를 욕심낼 여력이 있다면 주저 없이 이어가시길 권합니다. 제 경험상 청화산은 목적지가 아니라 더 긴 이야기의 시작점으로 걸을 때 진가가 드러나는 산입니다.